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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26에서 12.12사건의 진상 1

비구름달 2010. 10. 26. 15:03

1  제1사단장으로 근무한지 1년2개월 후인 79년3월5일.  전두환 소장은 천하 제1사단 장병들의 가슴속에 “용자(勇者)는 살고 겁자(怯者)는 죽다는”는 명언을 남기고 후임 최연식 장군에게 물러주고 국군 보안사령관에 임명됐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군정법령(軍政法令) 제28호에 의거, 남조선 과도 정부에 의해 국방사령부가 설치되면서 비로소 오늘날 국군보안사령부의 효시가 되는 정보과가 탄생했다. 다시 2년 뒤인 1947년, 조선경비대 안에 진일보한 정보처가 설립됨으로써 군이 필요로 하는 정보수집 및 군내부의 방첩활동과 국내 주재 해외무역관의 연락 등 정보업무를 관장하였다.


이 초기의 정보처가 1948년 4월3일 제주도 폭동사건을 계기로 정보조직 강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같은 해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면서 국방부직제에 의거 육군정보국으로 개편되었다. 그해 10월, 여수반란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자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했고 다음해 1월20일부터 육군정보국은 숙군작업에 착수, 5백여 명에 이르는 군부에 침투한 적색분자를 검거하는 공을 세웠다. 그 뒤 대한민국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밀파된 북괴 정치보위부 소속 간첩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육군정보국은 그 직속부대로 예하 방첩대를 설치하고 오열분자 적발과 원조물자 유출방지 등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10월10일 군경합동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 육군정보국은 6.25사변을 당한  해의 10월21일 그 임무의 중요성에 비추어 육본 직활 부대인 완전독립 특무부대로 새 출발했고, 1960년 7월 민주당정권이 등장하면서 종래의 이미지 개선을 내세워 지금까지의 고유 명칭인 특무부대를 방첩부대로 개칭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반도를 적화시키려는 북괴의 야욕 증대와 한편 점차 현대화되는 군의 전력규모는 필연적으로 보안부대의 업무를 팽창케 했다.


군사체제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방위하고 대내적으로 정치 및 경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기반위에 구축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이 모든 관계를 유기적으로 묶을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3군 보안부대의 통합이 불가피 졌고, 결국 1977년 9월26일 대통령령 제8704호에 의거 국군보안사령부가 발족되었던 것이다. 국군보안사령부는 군의 절대 안전과 국가보위를 지상목표로 삼아 북괴집단은 물론 어떠한 외부세력도 군내부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꾸준한 예방활동을 전개함과 아울러 군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발맞추어 방위산업의 보안지원과 군내부의 사고체제 확립이 그 우선 임무였다.


전두환 장군의 생각은 지금까지의 특무부대, 방첩부대로 이어온 국군보안사령부의 흐린 이미지를 쇄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월권이나, 이권행위에만 급급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 부대를 밖으로는 부드럽고 안으로는 강직하게 만들자.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가 우선하는 사회, 행복과 영광이 약속된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제1사단에서 이루었던 것처럼 보안사에서도 꼭 이행해 나가리라. 국군보안사령부 현관을 들어서면서 전두환 장군이 느낀 것은 요 며칠 동안 그가 염려하며 예견했던 일들이 사실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확신이었다.


당시 군 인사 깊은 곳을 지켜본 한 인사에 따르면 그때 보안사령관에 내정된 장성은 全소장과 함께 육사11기 선두주자였던 김복동 소장이었다 한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한 일이지만, 그때 金소장이 보안사령관에 부임했더라면 우리 현대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金소장이 고사했어요. 김재규 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바있는 金소장으로서는 그 자리가 탐탁지 않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金소장이 고사해서 전두환 소장이 임명된 것입니다. 全소장이 보안사령관에 임명될 무렵 노태우 경호실차장보는 제9사단장에, 김복동 소장은 경호실작전차장보로 발령받았다.


사단장이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는 것은 극히 드문 승진인사였다. 全소장의 전임자 진종채 장군은 육사8기생의 자리를 11기가 바로 승계했다. 全소장의 보안사령관 임명에 대해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말한다. “나와 장관 노재현은 경호실장의 발호로부터 군을 지키고, 대통령에게 용이하게 접근하여 군의 권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었는데, 당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全소장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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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시 보안사령부의 실태는 79년 1.19조치로 권한이 축소되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을 때이다. 78년 여름께, 최전방 모 사단의 철책선 근무부대에서 큼직한 사건이 발생했다.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대대장(중령)이 월북해 버린 것이다.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진노했다. 남북 쌍방 간에 사병들의 월북. 월남은 간간이 있어 왔으나 우리 측의 경제력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한 70년대를 지나면서 월북사건은 뜸했던 터였다.


전방대대장의 월북사건은 군내에 큰 파문을 불렀고, 급기야는 중앙정보부가 대통령의 특명을 얻어 보안사령부에 일대 수술을 가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해당 사단의 사단장인 金모 소장은 문책을 당한 뒤 옷을 벗었다. 그대대장은 월북하면서 자기 당번병과 통신병 등 사병2명을 데리고 갔었다. 도중에 1명이 월북을 꺼리자 권총으로 쏘아죽이고 다른1명과 함께 북한으로 달아났다. 뻔 한 각본대로 그 대대장이 곧 대남 방송에 등장했다. “썩은 남한사회가 싫어 탈출했다. 특히 보안부대의 횡포가 보기 싫어 지겨웠다.”는 내용이 되풀이됐던 것이다.


사실 당시 그대대장에 대한 보안대의 조치는 정당했지만 일이 어처구니없게 꼬였기 때문에 문제가 커졌던 것이다. 월북한 대대장 柳모는 돈 문제, 여자관계 등 갖가지 비리로 물의를 빚어 관할 보안부대의 조사를 받았다. 부대 전투력의 심각한 저해요인은 당연히 보안부대의 소관이었다. 당시국군 보안부대에 근무 중인 C씨에 따르면 “최전방 대대의 지휘관인 만큼 극도의 보안 속에 대대장을 은밀히 불러 수사했습니다. 그 결과 군법회의에 회부할 사안임이 드러났어요. 그때 바로 구속 조치를 했으면 되는 건데, 대대장의 유고가 빚을 부대원들의 동요가 문제였습니다. 일단 돌려보낸 뒤 절차를 밟자는 판단아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귀대시켰지요. 그런데 그자가  고민 끝에 그날 밤으로 휴전선을 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 대대의 보안부대원이 柳중령에게 지나친 횡포를 자행한 것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계급 서열이 낮은 보안대 장교가 대대장에게 안하무인격으로 행동 했다는 것이다. 일이 이쯤 되자 사건수사는 보안부대의 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김재규의 중앙정보부에 칼자루가 맡겨졌다. 당시의 중정은 정보기관들의 업무를 통제, 감독할 권한이 있었다. 대공사건 이었던 만큼 金부장은 사건을 (대공수사담당)에 맡겼다. 보안사 출신들이 곧잘 80년 불교계의 “법난”에 비유하곤 하는 이른바 “1.19조치”는 이렇게 시작됐다.


60~70년대에 걸쳐 중앙정보부와 보안사(국군보안부대)는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경찰에도 정보기능이 있었으나  이 두 기관에 비하면 일개 머슴 객에 지나지 않았다. 정보기관은 속성상 활동 영역을 무한히 확장함으로써 자체 권력을 살찌우려 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권력 기관과 크고 작은 마찰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는 당연히 법과제도로 조정돼야 했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일반국민들은 이름만 들어도 섬뜩했던 두 권력 기관이 베일 속에서 벌인 씨름은 가위 용호상박(龍號相搏)이라 할 만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간부로 수사를 지휘했던 K씨의 기억 “월북 사건 관련자는 물론 대대장 柳모씨를 조사했던 보안부대원, 여타 일반 지휘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했습니다. 朴대통령으로부터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하고 원인을 규명하라“는 엄명이 떨어진 탓에 서슬이 시퍼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군내 여론을 정취해 보니 보안부대의 원성이 적지 않았어요. 보안부대 하급자가 직분을 넘어 장성급 지휘관을 상대로 압력을 넣는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특정지휘관에게 불리한 정보보고를 일부러 올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또 민간인을 상대하는 보안부대원의 경우 지방 기관장에서 기업체 사장에 이르기 까지 두루 손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각하께 충성을 하려해도 보안대가 걸려 제대로 충성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일부 장교들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지요. 중아정보부는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朴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보안사가 대(對)민간 정보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동시에 각종 비리에 연루된 보안부대원들을 정화하자는 의견도 냈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이지시가 구체화된 것이 앞서 말한 1.19일의 “1.19조치”


당시 보안사령부의 영관급 장교이던 A씨의 설명. “통상 보안부대의 임무는 대전복. 대태업, 대간첩의 세 가지로 나뉩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일반민간인이 정보수집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어요. 이때 자칫하면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80년대 들어서도 몇 차례 이런 물의가 빚어지지 않았습니까. 70년대 당시 보안사 요원이 ”정보 업무를 하고 있다“면 그건 민간정보를 다루는 일을 담당한다는 의미였어요.”보안업무“라면 군 관련 정보 업무를 ”대공한다“는 것은 간첩 잡는 일을 하고 있다 뜻이고요. 전시나 계엄하가 아닌데도 군이 정당, 언론, 경제부처 등 일반 사회에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정보 업무 때문이었는데, 1.129조치로는 바로 이 대민 정보활동을 없앤 조치였습니다.


한마디로 ”힘“을 빼버린 조치였지요. 그대 보안사의 정보처는 방위산업체로 바뀌었고 줄잡아 70여명의 요원들이 일반부대로 전출되거나 아예 군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의 보안사 인원 규모를 감안하면 ”대학살“이라고 불릴 만 했어요.” 이조치의 배경에는 물론 비대해진 보안사를 견제 하려는 김재규 정보부장의 의도가 작용했다. 중정간부 K씨는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재규와 합세해 보안사의 손발을 잘라내는 일에 적극 찬성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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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시의 보안사 간부출신의 말 “77년 9월에 대통령령으로 3군 보안부대가 국방부 산하의 국군 보안부대로 통합됐지 않습니까. 당시에는 임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조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통합부대의 위력이 자연히 드러나게 됐지요. 그래서 다른 권력기관으로부터 칼질을 당하게 된 겁니다. 특히 중앙정보부 같이 막강한 기관일수록 자기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곳이 생기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속성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점에서는 따로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는 차지철 경호실장도 김재규와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 비슷한 사례로. 金부장과 車실장이 합작해서 총선 패배의 책임을 덮어 씌어 김정렴 비서실장 세력을 몰아냈던 78년12월의 개각을 연상하면 됩니다.


정보부장 부임 전에 이미 보안사령관을 역임한 김재규인지라 부임 초부터 보안사 간부들을 “아랫것” 보듯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민정보 기능마저 짤러 나가자 보안사는 결정적으로 위축됐다. “조치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점검한다는 이유로 중정국장이 대구(정탁영). 부산(권정달)등 전국의 지구 보안대를 순시하며 브리핑을 받았다. 들르는 지방마다 보안대 간부들은 초라할 정도로 얼어붙은 자세로 현황을 보고했다.”고 당시 중정 관계자들은 증언했다.


정보부와 보안사의 엎치락뒤치락하는 공방전의 와중에 전두환 소장이 79년 3월5일자로 보안사령관에 부임한일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안사 영관장교출신의 A씨의 말. “79년은 4년째 발효 중이던 긴급조치 9호의 약효가 거의 떨어져가는 때였어요. 정권의 동맥 경화증이 그만큼 심했지요. 지금 와서 말이지만 정보기관의 위기의식도 심각했습니다. 박대통령이 全장군을 사령관으로 임명했을 때 우리는 ”각하의 심복을 보냈구나, 뭔가 달라지겠다.“고 느꼈어요. 보안사의 정보는 특색이 있습니다. 중정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정보를 가감, 윤색하지 않고 결재단계가 아주 짧지요.


군부대라 전문성은 약할지 몰라도 확인된 정보는 있는 그대로 써 올리는 게 장점입니다. 판단은 사용자(대통령)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요. 정치색이 없다는 특색 때문에 통치자가 다른 경로의 정보와 크로스체크하기 알맞아요. 全사령관이 부임해 1차로 한 작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대 정화작업이었어요. 1.19조치 때보다 더 많은 인원이 쫓겨났습니다. 1백여 명 가랑일 겁니다. 막강한 권한을 배경으로 인사 청탁이나 이권개입을 하던 일부요원들은 가차 없이 옷을 벗기거나 전방부대로 쫓아냈습니다. 다들 군기가 바짝 들었지요.


부대 내부를 정비 하면서 한편으로 일반부대의 부조리를 사령관 권한으로 “청소”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몇몇 연대장들은 부대에 사진반을 운영하면서 부하들이 바친 돈을 부대 회식비에 충당하기도 했고, 가끔은 PX를 끼고 막걸리에 물을 탄다든지 하는 수법으로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여기에 일부 보안부대원들이 약점에 끼어들어 용돈을 타 썼고요. 봉급이 워낙 적으니 지휘관들이 이런 편법을 당연시하는 풍토마저 있었지요. 정화작업이 진행되면서 후속 조치로 각 군부대의 PX는 통합 운영됐고 연대장, 대대장의 판공비도 그때 신설됐어요. 대대장급이상 지휘관은 집에 왔다 갔다 하지 않도록 관사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A씨는 “그러나 더 중요한 건 全사령관이 부대를 일사불란한 체제로 다듬는 일방 은밀히 ”정보업무“를 시작한 대목일 것”이라고 증언했다. “없어진 정보처는 ”방위산업체“로 변했다가 다시 ”군수산업체“로 개칭 됐지요. 全사령관은 정보 업무에 밝은 요원들을 일부 이곳에 배치해 대민정보 활동을 재개 했습니다. 그전처럼 이곳저곳 마구 돌아다니지는 못한 대신 주로 고위층 주변의 정보를 수집했지요. 중정 같은 다른 기관이 보안사에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보안사령관도 ‘돌아가는 애기“는 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이 활동은 10.26때 까지  계속됐어요. 보안사가 10.26이후의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체 정보 채널을 줄곧 유지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0. 26을 전후해 보안대에 근무했던 G씨의 회고. “10. 26 전에는 중정에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같은 정보 업무를 해도 중정 사람들은 007가방에 돈 다발을 꾹꾹 눌러 넣고 다닐 정도로 여건이 풍족했어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달라지더군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일이 있어요.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텔레비전에 나와 대통령시해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이지요. TV카메라 앞에서도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발언하는 全사령관을 보고 오랫동안 정치 정보 업무를 담당했던 고참준위가 말하더군요. ”다음 대통령은 全사령관님이다. 내 말은 틀림없다”고요. 지금 생각해도 거의 동물적인 정치 감각에서 우러나온 무서운 판단이었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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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두환 장군은 사령부의 여러 현황을 브리핑 받는 동안에 부대를 일사문란하게 확립 헤야겠다는 생각이 더욱더 굳어갔다. 배경이 없거나 돈이 없는 요원들은 무능한 인사로 낙인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권력이라는 눈먼 무기로 무장하고서 많은 이권이며 월권행위에 개입해 있었다. 全장군은 정리를 시작했다. 그는 하나의 기준을 설정했다. 정의롭고 사심이 없으며 그리하여 자기의 맡은바 직무에 충실할 수 있는 납득할 만한 기준을 세워두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는 장교건 하사관이건 가차 없이 정화했다.


그와 함께 그늘에 묻힌 유능한 요원들을 발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우한 부대원이나 소외된 요원들을 그는 애써 찾아내어 격려하고 위로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매일처럼 그가 측근 참모들에게 입버릇처럼 들려준 말이었다. 그의 재빠른 정화작업은 얼른 보면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부하에게 100% 충성을 바친다. 그리고 나는 80% 만큼의 충성을 기대한다.” 그의 지휘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대, 그 부대야말로 가장 정예롭고 가장 충성스러운 부대가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아낌없이 충성을 바치겠다는 뜻이었다.


“요즘은 예산을 많이 줘서 이상하군, 이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다 쓴담.” 거짓말같이 들리지만 사실이었다. 장군은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 단 한 푼도 어긋남이 없도록 했던 것이다. 언제나 위에서 (손을 탄)예산만을 받아 버릇하여 만족스럽지 못한 돈으로 일을 꾸려나가는 데 익숙해진 요원들은 갑자기 증액된(?) 예산을 받아들고 그렇게 입을 딱 벌렸던 것이다. 자연히 비리나 부정이 싹틀 소지가 소멸되기 시작했다.


보직이나 진급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과 소질과 경력을 아주 잘 배합했다. 청탁하거나 애써 찾아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보장을 받는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당연히 부대의 분위기가 달라져갔다. 그리고 그 정화작업 뒤의 인사쇄신과 부하들에게 대한 복지 문제가 눈에 뜨이게 성과를 거두자 그 기운은 급기야 전군에 파급되기 시작했다.


1079년 7월19일, 밤10시가 주금 지나서였다. 1처장 정도영 대령은 전두환 사령관의  부관 손삼수 중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령관님의 전화입니다.” 전화에 전장군의 나지막하고 쉿소리를 내는 명확한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정 처장 지금 어디 있나?”  “네 여기 숙소입니다.” “아 그렇겠군 그럼, 지금 전방에 가려고 하니 내 숙소로 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한 3.40분 걸릴 것입니다.” 鄭대령은 급히 준비하면서도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鄭대령이 도착하니 장군이 부관 孫중위를 대동하고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차량도 준비되어 있었다. “자 타게”


사령관과 나란히 뒷 자석에 앉은 鄭대령은 갑자기 전방부대에는 왜 가는 것이지,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았는가?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차가 신촌 로터리를 지나자 그제야 全장군이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강조해온 지시사항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앞 자석에 앉은 부관 孫중위는 정신이 번쩍 났다. 지금으로부터 꼭 한 달 전, 만찬에 다녀오는 길에 全장군은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던 것이다. “절대로 알리지 마라. 앞으로 한 달 뒤인 7월19일에 예하부대를 불시에 방문하겠다.”


全장군의 그 말을 부관도 깜박 잊고 있었다. 더욱이 오늘 퇴근 때 장군이 불쑥 저녁식사를 하고 기다리라고 말했을 때도 그는 그 영문을 몰랐던 것이다. 차는 00사단의 부안부대 일찍 사관실 앞에서 멎었다. 장군이 1처장에게 명령했다. “3개연대의 보안반장을 전화로 다 점검해봐.” 1처장 鄭대령이 전화로 확인하는 동안 장군은 팔목시게를 들어다보고 있었다. 00사단의 보안부대장을 호출해 놓고 도착 깨까지의 시간을 재고 있는 것이었다. 10여분 만에 보안부대장이 도착했다. “대체로 합격이로군.” 全장군은 그 말을 마치자 이내 차에 올랐다.


다음에는 일산에 있는 0사단이었다. 이미 시간이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는 때라서 제0사단의 보안부대 일찍 사관은 군화 끈을 푼 채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있었다. 더욱이 계절도 한 여름이었다.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이마를 찌푸렸다. “시원치 않군. 鄭처장, 이놈들을 좀 특별교육을 시켜야 되겠어. 차는 다시 통일로를 따라 북상하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차를 몰면 천하 제1사단에 닿게 될 것이다.  ”사단장으로 근무했을 동안에도 나는 제대로 밤잠을 잘 수가 없었어, 만약 우리사단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경우엔 지척에 있는 수도서울이 큰일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수행하는 鄭대령도 부관 孫중위도 다음의 불시 방문지는 제1사단일 줄로 지례 짐작했다.


한 밤중 사령관의 불시시찰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므로 이미 당한 두 사단의 보안부대에서는 사령관이 탄 차의 진행방향을 어림잡아 미리 제1사단 보안부대에 경비전화로 알려 주었다. “이봐! 빨리 준비하고 있어! 사령관님께서 지금 너희 사단으로 가고 계신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사령관차는 통일로의 중간 허리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꺽었다. 사령관은 그들보다 먼저 앞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배가 고파지는걸, 어디서 라면이라도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군.” 시간은 새벽 1시를 조금 지나 있었다. “이 밤중에 어디서 라면을 사 먹겠습니까?” 鄭대령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마지막으로 들른 제00사단에서는 근무상태가 칭찬할 만했다. 사단 부대장으로부터 현황 보고를 받은 사령관은 소탈하게 말했다. “훌륭하군,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네 무엇입니까?” “여기서 라면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나?” 급하게 끓어온 라면을 국물까지 훌훌 맛있게 먹은 사령관은 그제야 차를 서울로 돌리도록 명령했다. 새벽 4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우리 사령부에 들어가서 자지.” 사령관과 鄭대령은 그날 새벽에 숙소로 가지 않고 사령부에서 눈을 붙였다. 그 뒤로 각 예하부대의 근무 태세가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바뀌어 진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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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79년 10월26일 한국현대사를 뒤바꿔놓은 운명의 총성이 울린 그날, 박정희 정권의 내 노라 하는 권력자 가운데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만큼 민첩하게 행동한 이는 없었다. 또한 전장군의 발 빠르고, 용의주도한 이날의 행동은 앞으로 혼란한 민심과 나라를 구하고자하는 장군의 충정어린 마음을 돋보이기에 충분하다. 


드르륵 - 드르륵 -. 주인이 집을 비워 적막감이 감도는 만추의 저녁, 청와대 본관에서 들린 총성은 남서쪽이었다. 경호실의 본관 당직과장 함수룡(咸壽龍)씨(경호처 경호과장)는 『오발사고로는 좀 심한데…』라고 생각했다. 곧 본관 입구에 놓인 경호데스크 전화로 여러 초소에서 총성보고가 잇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咸과장은 그날 경호과의 1계(係)규모병력을 본관에 당직조로 배치시켜놓고 있었다. 그 순간은 강력한 유신체제의 사령부를 지키는 책임자가 된 咸과장이었지만 유신의 심장 대통령은 저녁 6시쯤 궁정동 비밀식당으로 이동하였으므로 청와대 본관은 껍데기에 불과하였다.


咸과장은 경호 실내 상황실로 총성보고를 전달하였다. 상황실에서도 이미 여러 초소로부터 총성보고를 받고 있었으나 어디서 난 것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장이 첫 총성보고를 접수하기 몇 분전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본관 뒷 초소에서 인터폰으로 경호데스크에 연락이 왔던 것이다.『이상한 물체가 본관 청기와 위에 앉아 있습니다.』咸과장은 1·21사태를 퍼뜩 연상했다. 북한 공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경호원들을 M16소총으로 무장시켜 뛰어 나갔다. 그것은 새였다. 어둠 속에서 독수리만한 큰 덩치가 지붕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몸이 오싹해졌다. 이름 모를 이 새?울음을 몇 번 토하더니 날아가 버렸다. 불길한 예감을 갖고 돌아오자마자 咸과장은 총성을 들은 것이었다. 텅 빈 본관, 어둠 속의 연발 총성, 이름 모를 새… 咸과장은 불길한 느낌이 확 들었다. 갑자기 청와대가 흉가같이 느껴졌다. 총성의 출처도 확인 안된 불안·혼돈의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이번엔 청와대 정문을 지키는 11초소에서 전화연락이 왔다.

 『비서실장이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데 이상한 모습입니다』

 咸과장은 비서실장이 다른 차를 탔다면 납치된 상태일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확인한 뒤 통과시켜라!』

 『아이셔츠 바람이고 신발도 짝 재기로 신고 있습니다. 실장이 틀림없습니다.』

 咸과장은 이 순간 『변괴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장한 경호 병력을 본관 앞에 배치시키고 金桂元실장을 기다렸다. 金실장은 본관 앞에서 차를 내리더니 걸어서 올라오고 있었다. 金실장은 마중 나간 咸과장에게 『이재전 차장을 빨리 찾아라!』고 했다. 咸과장은 金실장이 朴正熙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咸과장은 허둥지둥 본관으로 들어가는 金실장을 쫓아가면서 『지금 총성은 뭡니까』라고 물었다. 金실장은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재전 차장을 빨리 찾아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咸과장은 『총성과 관계있는 일입니까』하고 재차 물었으나 金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咸과장은 북한의 남침이 시작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는 직접 李在田 경실차장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李차장은 집에 있었다.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 張世東대령은 경복궁내 단장실에서 연발총성을 들었다. 부마사태 이후 그는 영내 생활을 하고 있었다. 3층에 단장실이 있어 총성은 비교적 잘 들렸다. 10시 방향, 즉 서북쪽이었다. 소총소리인데, 한두 발이 아니었다. 수십 발, 아니 백발은 될 것 같았다. 비상대기 중이던 30경비단 전체가 총성의 출처를 확인하는 데 촉각을 곤두세웠다.


세 군데 이상에서 총성보고가 들어오면 발생 장소는 거의 정확히 계산된다. 1·21사태 때 30경비단의 전신인 30경비대대의 작전장교(대대장은 全斗煥 중령)로서 김신조(金新朝)부대의 기습에 대응한 경험이 있는 張대령의 대처는 빨랐다. 총성이 궁정동 식당 쪽이라는 판단이 섰고 그러자 대통령의 현 위치가 궁금했다. 張대령은 바로 車智澈경호실장실로 전화를 걸었다. 부관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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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실장님 어디 계십니까?』

 『경호 실장께서 비서실장과 본관에서 식사하고 계십니다.』

 張대령은 경호 실장 있는 곳에 대통령이 있기 마련이므로 일단 안도했다. 張대령은 궁정동 식당의 성격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張대령은 경비단에 출동대기명령을 내리고 발동이 걸려 있는 지프차에 몸을 던지듯 실었다. 몇 분 안 걸려 약 3백m 떨어진 궁정동 식당 건물 앞에 도착하였다. 골목 저쪽 끝으로 승용차의 꽁무니 신호등이 보이는데 지금 막 궁정동 식당에서 나온 것 같았다. 張대령이 문 쪽으로 혼자서 걸어가는데 어둠 속에서 사복경비원(중앙정보부 소속)이 튀어나오더니 M16소총을 張世東대령 가슴팍에 들이댔다.

 

그의 전투복에는 레인저 휘장, 경호·공수휘장, 훈장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무슨 총 소립니까』

 『비상연습…』

 『비상연습 하는데 무슨 총소리가…』

 『들어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경비원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철제문을 잠가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張世東대령은 갖고 있던 워키토키로 경호실의 상황실에 현장상황을 보고했다. 단장실로 돌아와서는 다시 경호실장실로 전화했다. 부관은 『본관에서 식사중이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張대령은 수경사령관 전성각(全成珏)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휘보고도 올렸다. 張대령은 또 바깥에 나가 있던 경호실 정동호(鄭東鎬)상황실장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총성이 난 시간은 퇴근시간이었다. 정부요인들이 이동 중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취약시간대였다. 어쨌든 張대령은 10·26 총성의 출처를 최초로 확인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그는 상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30 경비단 병력을 계속해서 출동태세로 두었다. 일부 병력은 작전 차에 탄 채였다. 그날 밤 끝내 출동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김계원(金桂元)비서실장은 朴대통령의 시신을 국군서울지구병원 응급실에 모셔놓고는 청와대로 돌아와 헐레벌떡 본관 2층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따라온 4∼5명의 경호원들에게 『최총리와 장관들에게 연락해서 청와대로 들어오도록 전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한 건장한 경호원이 金실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말했다. 『저는 전두환 사령관의 동생인 전경환입니다』 金실장은 『아, 그런가?』라고 인사를 받고는 『자네 권총에서 실탄을 좀 꺼내 줘』라고 했다.

 

金실장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권총을 찾아 갖고 가려다가 보니까 실탄이 없었던 痼甄? 金실장은 실탄 여섯 발을 빌어 자신의 권총에 장전하였다. 운명의 그날 밤 본관 당직 근무조로서 이 역사적 현장에 서 있었던 全敬煥 경호계장이 맨 처음 한 일은 국군보안사령부 비서실로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이었다. 26일 국군보안사령관 全斗煥소장은 사령부를 떠나지 않았다. 사흘 뒤로 일정이 잡힌 朴대통령에게의 단독 보고에 대비하여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全소장은 부마사태로 10월18일 새벽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이 발효되자 헬리콥터 편으로 부산에 내려갔었다. 부산지구 보안부대장은 권정달(權正達)대령이었다. 權대령한테 들렀다가 최석원(崔錫元)부산시장을 만나러 갔다. 마침 그때 崔시장은 金載圭정보부장을 만나고 있었다. 全소장은 시장을 만나지 못하고 나와서는 부산지역에 투입된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지휘부를 방문한 뒤 올라왔다. 全소장은 부마사태의 현장 감각을 얻은 직후 허화평(許和平)비서실장을 실무책임자로 하여 시국수습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許대령은 사무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부하들을 지휘하여 며칠 밤샘을 한 끝에 「중요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보안을 위해 필경으로 작성되었다. 全소장은 이 중요보고를 대통령께 할 수 있는 일정을 잡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10·26사건 직전에 보안사는 권력 면에서는 역사상 가장 약한 상태에 있었다. 정보부와 경호실의 견제를 동시에 받아 그 기능이 위축돼 있었다. 정보부는 보안사의 민간 활동을 금지시켜 놓은 데다가 보안사에 대한 감사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 보안사에선 또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안사의 모든 정보보고는 일단 차지철(車智澈)경호실장의 눈을 거쳐 간다고 믿고 있었다. 정보기관의 힘은 대통령을 그 기관장이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79년 3월에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대통령에 대한 단독 보고기회를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것이 10·26직전의 全소장이었다. 全소장은 시국에 관한 이 중요보고의 내용을 일반적인 것으로 위장하여 요약한 뒤 이를 미리 車실장에게 보여 안심시켰다.


그런 뒤 최광수(崔侊洙)의전수석과 박근혜(朴槿惠)양을 통해서 10월29일(28일이라는 설도 있다)에 대통령을 면담하기로 일정을 받았다고 한다. 중요보고의 내용에는 車실장의 전횡에 대한 지적과 인사문제에 대한 건의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全소장의 한 참모는 『그 보고는 그분의 자리가 걸린 일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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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全斗煥소장은 10월26일 저녁 7시30분쯤 연희동 집을 나섰다. 저녁 식사를 막 끝내고 나서였다. 피아트 승용차의 뒷자리에 사복차림의 全장군은 아내 李順子여사와 함께 탔다. 앞자리에는 전속부관 손삼수(孫杉秀)중위가 타고 있었다. 보안사 서빙고 수사 분실 직원들에게 갖다 줄 사과 두 궤짝도 실려 있었다. 피아트 132는 육군본부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일체 말이 없던 全소장이 불쑥 던졌다.

 

 『손 중위 권총 차고 왔나』

 『예 차고 왔습니다.』

孫중위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불안해졌다. 허리에 차고 있던 모토롤라 무전기를 다시 켰다. 孫중위는 全소장의 표정이 너무 침통하여 연희동 집을 나선 이후 무전기를 꺼 놓고 있었다. 피아트 승용차는 육군본부정문 앞을 지나 크라운 호텔 건너편에 이르렀다. 우회전으로 들어가는데 무전기에서 육성이 나왔다. 보안사령관 비서실 당번이었다.

『사령부로 전화하라』

조심하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孫중위는 全소장의 지시에 따라 차를 타이어 부품상 앞에 멈추게 하였다. 급히 뛰어내려 전화를 좀 쓰자고 했더니 주인은 『안 된다.』고 했다. 호주머니를 뒤져 2천 원을 던져주듯 하고 수화기를 잡았다. 비서실의 당직자는 『청와대의 전경환씨가 사령관님을 찾아서 급히 전화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孫중위는 청와대경호실 경호과 경호계장 앞으로 전화를 걸어 全씨를 찾았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몹시 허둥대는 느낌이었다. 孫중위는 피아트차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全소장에게 보고했다. 全소장은 『빨리 서빙고로 가자!』했다.

 

저녁 8시를 조금 넘어 서빙고 보안사 분실에 도착한 全소장은 분실장 자리에 앉자마자『상황실로 연락해서 전방상황을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孫중위가 보안사 상황실 상황장교인 어느 대위에게 전방상황을 물었다.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때 사령관비서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노재현(盧載鉉)국방부장관이 보안사령관실로 전화를 걸어 「全장군을 찾아 육군본부 지하벙커로 출두하도록 하라」고 했다는 전갈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도 全장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군의 정보책임자로서 상황을 파악한 뒤 상관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全소장은 다시 『경호 실장 전화 대라!』고 했다. 당시의 실력자인 車실장에게 이런 식의 전화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孫중위가 車智澈경호실장 부관 이효진 씨를 찾아 『보안사령관이 통화를 원 하신다』고 했다. 李부관은 『기다려라』고 한 뒤 수화기를 놓았다. 몇 분을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 全소장은 『왜 전화가 안 나오나』고 다그치더니 『전화 끊고 경호실 상황실장에게 전화 대라』고 했다.

 

 『보안사령관 전속부관 손삼수 중윕니다. 정동호 상황실장 계십니까?』

 『안 계십니다』

 『그 안에 지금 바쁘지요』

 『예, 바쁩니다』

 『안의 일입니까, 바깥일입니까』

 『안의 일입니다』

 『경호차 붙일 수 있나』

孫중위는 통화 내용을 全소장에게 보고했다. 全소장은 감을 잡은 듯 벌떡 일어섰다. 全장군은 서빙고분실에 도착 즉시 李順子씨를 피아트 승용차 편으로 집에 돌려보냈었다. 全장군은 공용차인 도요다 크라운 편으로 육군본부벙커로 갔다. 밤9시를 조금 지나서였다. 육군보안부대장 변규수(卞奎秀)준장(종합8기 출신)이 全소장을 안내했다. 지하 벙커는 고위 장성들이 왔다갔다 하는 등 부산했다. 복도 양쪽의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고 복도의 끝인 회의실 안에는 金載圭중앙정보부장과 이희성(李熺性)육군참모차장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윤자중(尹子重)공군참모총장과 노재현(盧載鉉)국방장관도 보였다. 鄭昇和총장은 궁정동의 정보부장 집무실내 식당에서 김정섭(金正燮) 중정차장보와 식사하다가 총성을 들었다. 그는 허겁지겁 뛰쳐나온 金載圭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밤8시5분쯤 육본벙커에 도착, 盧載鉉국방장관 등 수뇌부에게 비상연락을 취했다. 車실장이 朴대통령을 시해한 것으로 믿고 있던 鄭총장은 경호실 李在田차장과 수도권의 주요 군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車실장과의 연계여부를 파악하기도 했다. 그는 27일 새벽에 비상계엄령이 발효될 것에 대비하여 계엄군의 출동과 사후 조치에 관하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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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서 굳은 얼굴을 하고 고독하게 앉아 있는 金載圭는 손삼수(孫杉秀)중위에게는 웬지 살벌하고 생소한 느낌을 주었다. 全斗煥소장도 나중에 『눈인사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김재규한테 섬뜻한 살기를 느꼈다』고 말했다. 회의실 옆방은 수행원 대기실이 돼 있었다. 거기서 孫중위는 金載圭 부장의 수행비서관이며 육사 선배인 박흥주(朴興柱)대령과 마주쳤다. 朴대령은 궁정동 식당에서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총질을 하고 나온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孫중위는 『무슨 일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朴대령은 긴장된 자세였고, 말하기도 귀찮다는 태도였다.

 『청와대 내부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모르겠어?』 그러고 있는데 全소장이 복도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卞奎秀준장과 孫중위가 全소장에 따라붙었다. 복도를 걸어 나가면서 全소장은 『내 차에 지금 경호차 붙일 수 있나』라고 했다. 卞준장은 『지금은 곤란합니다.』고 했다. 『알았어! 지금 내가 나갔다는 사실을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도록 하라』 全소장은 재차 다짐을 했다. 크라운 승용차로 보안사령부를 향해 갈 때 全소장은 『전속력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차 중에서 全소장은 『(허화평) 비서실장과 (정도영)보안처장, 그리고 (남웅종)대공처장을 대기시켜라』고 지시했다. 孫중위는 무전기를 통해서 음어로써 이 지시를 사령부로 전했다.

  

10월26일 오후 5시쯤 서울지구 국군통합병원장 김병수(金秉洙)준장(공군)은 朴대통령이 삽교천 행사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정시에 퇴근하였다. 동부 이촌동 현대아파트의 자택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난 직후 당직 군의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비서실장이 환자를 데리고 왔는데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金원장은 그 전에도 金桂元실장이 중환자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위독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병원에 나가보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당직 군의관이 마중 나와 『환자가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金원장은 『야, 이 친구야, 죽었는데 뭣 한다고 연락을 해!』라고 짜증을 부렸다. 현관에 이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金桂元실장은 돌아가 버렸다고 하고, 경호실 직원인 듯한(실제는 중앙정보부 직원) 두 사람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으며 군의관들은 주눅이 들어 있었다. 金원장이 그 환자가 있는 응급실로 들어가려고 해도 그 두 사람이 막는 것이었다. 『원장이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金원장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 사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고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 나서 응급실로 들어가니 막지 않았다. 환자는 병상에 누인 채였고 하얀 시트로 덮여 있었다. 얼굴도 흰 타월로 덮여 있었다. 金원장은 몇 번이나 『누구냐』 『어떻게 된 거냐』고 해도 두 사람은 무조건 모른다고 했다. 『사망진단서를 끊으려면 내가 알아야 한다.』고 해도 안 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는데 金桂元실장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金원장이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金실장은 『대통령 입원실에 정중하게 모셔라』고 했다.


金원장은 화가 나서 『실장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라고 했더니 金실장은 우물우물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金실장이 또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응급실에 있다』는 얘기를 듣더니 『그러면 청와대 내 병실로 모실까』라고 했다. 金 원장은 또 『그 무슨 말씀을…』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고 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감시자들은 그림자처럼 金원장을 따라다녔다. 金원장이 『누구인지 알아야겠다.』고 조르니까 한 사람이 환자의 얼굴을 덮은 타월을 반쯤 들어 보였다. 金원장은 그래도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金원장은 『가슴에 총상이라니 자세히 보자』면서 시트를 제치고 와이셔츠를 헤쳐 배를 드러내 보았다. 배에 흰 반점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눈에 익은 반점들이었다. 金원장은 그 전에 청와대 의무관으로 있었다. 朴대통령을 수행하여 진해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朴대통령은 金씨를 보더니 『야 이 친구야 이것 좀 고쳐주지 않을래?』라고 하면서 배를 가리켰다. 희끗희끗한 반점이 곰팡이 피듯 퍼져 있었다. 이 반점은 곰팡이의 일종인 티니아 벨시코라(Tinea Velsicora)균인데, 金씨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의 배에 약을 발라주기도 했으나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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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뎃?』『예스』

죽어 있는 환자가 대통령이란 것을 확인하는 순간 金원장은 『무아지경이 돼 버렸다』고 했다. 『그 순간 그저 멍해지고 나의 존재는 없어졌어요. 한 2분간 정신 나간 상태로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金桂元실장은 돌아가 버리고, 내 주위에는 감시자가 붙어 있다. 외부로의 통로는 보안사뿐이다…』 감시자 두 사람은 金원장을 졸졸 따라다니며 외부로 전화를 못하게 했다.


金원장은 집무실 내 응접실에 가 앉았다. 탁자에는 세 대의 전화가 놓여 있었다. 일반전화, 청와대 직통전화, 그리고 보안사 경비전화. 누가 전화를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보안사 경비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드니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禹國一)준장이었다. 禹준장은 金원장 집무실에 자주 놀러와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禹준장은 『예스, 노만 하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운디드(Wounded)?』

 『노우』

 『뎃(Dead)?』

 『예스』

 『車실장입니까?』

 『노우』

 『코드 원입니까?』

 『예스』

 전화가 끊겼다. 옆에서 지켜 서 있던 한 감시자(나중에 중앙정보부 궁정동 사무실 운전원 유성옥.柳成玉으로 밝혀짐)가 『어디서 온 전화냐』고 물었으나 적당히 얼버무렸다. 禹國一씨(국일자문 서비스 대표)는 『그 전에 보안사 직원을 병원으로 보냈는데 시신이나 원장에게 접근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 비서실장이 데려 온 환자라고 해서 나는 대통령이라는 직감을 갖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것이다. 대통령시신이 다른 병원으로 갔으면 신원확인이 어려웠을 것이고 그 뒤 사태가 다른 방향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全斗煥사령관의 보안사가 정부 내 정보기관 중 대통령의 죽음을 최초로 확인한 것은 全장군과 보안사가 혼돈 속의 그 뒤 상황을 주도하는 데 상당히 기여를 하게 된다. 金원장은 두 감시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비상 소집된 군의관들 중 필수요원만 남기고 퇴근시켰다. 그리고는 간호부장을 불렀다.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대통령실로 정중히 모셔라』고 지시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대통령의 지시이니 저 시신을 대통령실로 모셔라』고 했다. 金원장은 간호부장과 함께 응급실에 있던 대통령의 시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눈도 감겨드렸다. 잠자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오른쪽 귀 쪽에서 들어간 권총 알은 왼쪽 광대뼈까지 와서 살 속에 박혀 있었다. 탄환이 만져졌다. 머리에서는 출혈이 거의 없었다. 얼굴은 창백했으나 붓지는 않았다. 얼굴을 덮은 타월은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金원장이 『이분 외투를 달라』고 했더니 감시자는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넥타이는 맨 채였다. 등 뒤로 손을 넣으니 가슴을 꿰뚫은 총탄으로 출혈이 많았던 듯 끈끈한 피가 만져졌다.


金원장은 대통령의 사망 시간을 저녁7시55분 정도로 일단 추정하였다. 즉, 金桂元 씨가 대통령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金원장은 『허파를 관통한 제1탄은 치명상이 아니었고 머리의 제2탄이 치명상이었다. 제1탄만 맞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다면 살아났을 것이다』고 했다. 10.26그날 그 혼돈 속에서 보안사가 정보기관 중 최초로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 확인은 그 후 상항을 보안사가 주도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대통령유고라는 그 혼돈 속에서 그렇게 순발력을 가지고 민첩하게 대처한 것이다. 총격의 순간 궁정동 현장 근처에 있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대통령 암살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차지철 경호 실장을 의심, 청와대를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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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보, 김재규 부장과 차지철 실장이 다투다가 金부장의 총에 각하께서 돌아가셨어.” 그날 밤 11시경 10.26의 현장 목격자 김계원 비서실장은 대통령시해범이 김재규 부장이라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정승화 총장과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털어놓았다. 각료들이 이미 국군 서울지구 병원으로 가서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하고 국방부 청사로 돌아온 뒤 였다. 김 실장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각하를 쏘았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다.


“김 부장을 체포해야겠는데 저렇게 시퍼렇게 나만 노려보고 있으니....김 실장으로부터 범인에 대한 애기를 들은 정승화 총장은 김재규를 체포하기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 실장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여보 조심하시오. 김재규 부장이 아직도 권총을 가지고 있어요.“총장이 알아서 어떻게 하든지 빨리 체포하도록 하시오. 김 실장과 나는 되돌아가서 김재규를 안심시키고 있을 테니...정승화 총장에게 지시를 내린 노재현 국방장관은 김 실장과 함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임시국무회의실로 돌아갔다.


정승화 총장은 육본 벙커를 향해 뛰었다. 정총장이 육본 벙커에 도착할 무렵 김진기 헌병감도 뛰어 들어왔다. 정총장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를 명하며 구체적인 체포 방법과 신병처리까지 지시했다. “김준장이 직접 김재규 부장에게 가서 총장실에서 총장이 좀 만나자 한다고 전하시오. 복도로 유인해 오는 도중 복도 커브지점에 미리 수사관을 대기시켜 놓았다가 감쪽같이 체포하도록 해요. 그리고 말이야. 김실장 말이 김부장이 권총을 휴대하고 있다고 하니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고.... 체포 과정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범인을 상하게 하면 안 돼! 체포한 뒤에는 곧 보안 사령관에게 인계하시오.


한편 육군 보안부대에 보안사 “임시 캠프”를 설치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휘하의 각 처장과 참모들에게 캠프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지시한 뒤 각료들이 모여 있는 국방부 청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 사령관은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 옆방 장관접견실에서 국무회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정 총장 으로부터 급히 찾는다는 전갈을 받은 전 사령관은 청사를 나와 육본 벙커를 향해 뛰었다.


“부르셨습니까? ” 全사령관이 벙커 총장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정총장은 이미 김진기 헌병감에게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고 이희성 참모차장과 애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사령관에게 김계원 비서실장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제보를 받은 사실과 김진기 헌병감을 시켜   범인을 체포하고 보안사령관에게 인계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안사령관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 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비로소 군. 검. 경.의 모든 정보수사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합동수사 본부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전 사령관은 범인을 인수해 보안사가 갖고 있는 시내의 안가에 수용한 뒤 수사상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그러나 흥분하여 범인을 마구 다루지 않도록 주의 하고....정총장은 전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에게 김재규 체포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며 자신이 이 사건에 연루되는 자충수를 두고 있었다. 김진기 헌병감은 법정에서 그때 정총장이 김재규를 정중히 대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정총장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대통령을 죽인 패륜아“로 결론짓고 있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궁정동 현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정승화 총장의 그와 같은 지시들은 전두환 보안 사령관이 주도한 12.12사태의 불씨가 되었다.


정 총장으로부터 김재규 체포 지시를 받은 전사령관은 김헌병감과 함께 육본 벙커를 나섰다. 그들은 나란히 보안사 임시캠프가 설치된 육군보안부대로 향했다. 全사령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던 김헌병감은 “김재규 체포 작전”수행에 몰두하면서 이미 취해놓은 조치들을 全사령관에게 설명했다. “체포 현장에서 김재규를 인수해 갈 보안사 수사관 한 명을 붙여 주셔야겠습니다. 김헌병감이 지원을 요청했을 때 全사령관은 격한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대통령이....대통령이 죽었습니다. 김장군”

김헌병감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대통령의 사망사실을 처음으로 접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 육본 벙커에 도착했을 때 애기하는 것을 듣고 대통령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겼구나, 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김헌병감은 비로소 김재규가 바로 범인임을 알아 차렸다. 김헌병감은 헌병특수부대 1개 분대를 범인 김재규 부장이 있는 국방부 청사 후문에 대기시키고, 그 병력을 지휘할 장교를 찾았다.


마침 헌병 중대장 이시덕 대위가 영내에 있었다. 체격이 좋고 무술실력이 뛰어난 이기덕 대위는 국군의 날 행사 퍼레이드에서 항상 맨 앞줄 오토바이 부대를 선도하던 헌병장교였다.“이 대위, 즉시 완전무장하고 출동하라.” 휘하의 헌병대로 하여금 김재규 체포 작전 준비를 끝낸 뒤 김헌병감은 全사령관에게 범인 압송차량과 앞뒤 경호 차량 등 세대의 승용차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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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편 全사령관은 육군보안부대장실에 도착했을 데 보안사 보안처장 정도영 대령과 인사처장 허삼수 대령 그리고 보안처 군사보안과장 오일랑 중령이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기획조정처장 최예섭 준장, 대공처장 남웅종 준장, 대공과장 김판길 중령, 기조과장 김동명 중령이 잇달아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全사령관은 처음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명령했다. “김재규를 체포한다! 성능 좋은 차가 있어야 되겠다. 누구 차가 제일 좋은가?” “참모장님(보안사) 차가 제일 좋습니다. 신형 로열 레코드입니다.” 빨리 그 차를 이리로 몰고 오라고해.“


정도영 보안처장의 전화를 받은 우국일 참모장은 즉시 차를 육본으로 출발시켰다. 시간은 27일 자정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정 장군, 김재규 잘 알지, 그런데 김재규가 당신을 보면 얼굴을 알아볼까?” 김재규 체포 작전을 세세히 지시하던 全사령관은 정도영 보안처장을 향해 물었다. 대령인 정도영은 당시 준장 진급자로 확정돼 있어 全사령관이 “장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김재규가 보안사령관일 때 제가 과장을 했으니 잘 알겁니다.” “그런가. 그럼 김재규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 누구 없나?” “吳과장과 함께 왔습니다. 吳과장은 김재규의 얼굴을 알지만 김재규는 오 과장을 모릅니다.” 정도영 보안처장의 말에 全사령관은 즉시 오일랑 군사보안과장을 불렀다. “오 과장. 김재규가 자네 얼굴 모르지? 김진기 헌병감과 함께 가서 김재규를 체포하고 정동분실(보안사 안가)로 데려가, 정동 공작분실의 위치를 알고 있나?”


吳과장은 부마사태가 진압된 직후 보안사 사무실에서 종합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야근을 하다가 저녁 8시40분경 일찍 사령 남상일 중령으로부터 궁정동 총소리에 얼핏 전해 들었을 뿐, 지금까지 상세한 내용을 모른 채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체포 작전을 자세히 지시하며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말에 오일랑 과장은 긴장하자 않을 수 없었다. 사령관으로부터 “김재규을 체포 한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렇다면 그 체포는 내가 해야 될 성질의 것”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령관으로부터 “아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지기를 받는 순간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네 알고 있습니다.” “吳중령, 김재규를 연행할 때는 정중한 태도로 자연스럽게 해야 돼, 역습을 하거나 혹시 자살할지도 모르니 총기 단속도 철저히 하고....정동에 도착하는 즉시 허화평 실장에게 인계하도록, 아 그리고 오 중령은 계급장을 그대로 달고 헌병 완장을 차도록 해. 헌병감이 총장 비사실장 행세를 할 터이니 김재규가 물어보면 吳중령은 헌병대장이라고만 대답해, 알겠나?“ ”김재규를 정중히 모시라”는 정승화 총장의 지시를 그대로 옮긴 전 사령관은 거듭 “잘 알겠지?” 을 되풀이했다.


全사령관이 吳과장에게 김재규 체포 지시를 끝낼 무렵 정승화 총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全사령관, 김재규를 연행할 때에는 정중히 하여 안가에 모시고 혹시 자살할지도 모르니 총기를 철저히 수색하도록 하시오.” 정승화 총장은 조금 전 육본 벙커 집무실에서 김재규 체포를 지기할 때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날 그 운명의 시간에 정승화 총장은 계속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全사령관이 정승화 총장과 총화를 끝냈을 때 김진기 헌병감이 유군보안부대장실로 들어섰다.


“둘이서 꼭 김재규를 체포해야 한다. 김재규는 지금 국방부장관실에 있으므로 장관 보좌관 조약래 에게 ”정승화 총장이 육본 총장실에서 은밀히 기다리고 계십니다.“라는 말을 하라고 해. 그러면 김재규가 장관실을 나올 것이니 이때 자연스럽게 연행 하는 거야. 알겠지?” 헌병감은 정승화 총장 비서실장으로 행세를 해요. 연행은 吳중령이 하고 헌병감은 필요한 병력만 배치하시오. 문제는 김재규를 유인해 나올 때야, 국방부 현관으로 나올 경우, 그곳에는 김재규 경호원들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다른 통로를 이용하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대답을 하고 임시 캠프를 나섰다. 김헌병감과 오일랑 중령이 체포 작전을 시작하자 全사령관은 정도영 보안처장을 불러 후속 조치를 하달했다. “ 뒤따라가서 두 사람을 지원해줘, 만약에 실수에 대비하고 말이야, 오 중령을 몰래 엄호토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보안부대장실을 나온 정도영, 최예섭 처장과 육군 보안부대 운영과장인 강철진 중령은 권총을 차고 김헌병감과 오 중령을 뒤따라 나갔다. 김헌병감과 보안사 吳중령은 국방부 청사 후문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김헌병감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헌병특수부대 요원10여 명이 출동,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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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박정희 대통령에게 방아쇠를 당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국방부청사 안 임시 국무 회의실에 있었다. 金헌병감이 지휘하는 김재규 체포 조는 청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 청사 정문 쪽에는 정보부 안전과 소속 경호원들이 M16 기단단총으로 무장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더구나 서치라이트가 환하게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정보부장을 체포, 연행할 경우 충돌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항이었다. 金헌병감은 후문 쪽을 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반 출입구가 아닌 국방부 청사 후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金헌병감은 전에 국방부 조사대장으로 2년 정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청사내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는 즉시 국방부 총무과장을 불러 후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안됩니다. 이 문은 사용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애들아, 부숴버려.” 평소 인적이 없었던 국방부 청사 후문 앞에는 무장 헌병들이 말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들 사이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보안사에서 보낸 승용차 세대가 막 청사 후문에 도착했다.


金헌병감은 신형 로열 레코드 승용차를 후문 앞에 바짝 대게 한 뒤 앞뒤에 한 대씩을 배치했다. 앞뒤 차에는 무장헌병 두 명씩을 태우고, 김재규를 연행해갈 승용차엔 헌병 한명만 뒷 자석 안쪽에 앉게 했다. 김재규 체포를 위한 준비는 완료했다. 이제 이 긴장된 밤의 주인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만 유인해 오면, 이 자리에서 체포해버릴 것이다. 외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라이트를 꺼버린 세 대의 승용차는 나지막하게 엔진소리만 내고 있었다. 내게 붙어, 지금부터 김재규를 체포하러 간다.


권총에 실탄은 장전 되어 있겠지.“ 李대위 만약 김재규가 연행도중 반항하거나 하면 뒤에서 덮쳐버리도록 해! 金헌병감은 吳과장과 이기덕 대위에게 소리치며 2층 회의실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올라갔다. 국방부장관실 앞 중앙 복도에는 국무위원들과  군 수뇌들이 수행부관, 국방부소속 장교 등 20여명이 띄엄띄엄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수행부관 박홍주 대령도 그 자리에 끼어 있었다. 金헌병감 일행은 그들을 피해 비상통로로 조약래 국방부장관 보좌관실로 갔다.


“趙장군, 우리가 지금 김재규를 체포 하러왔소. 참모총장 지시오. 김재규 저 안에 있지요.? 내가 참모총장 비서실장이라고 할 테니 趙장군이 좀 불러내주시오. 총장님이 벙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귀 뜸 해주시오. 金헌병감의 애기를 들은 趙보좌관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육군준장인 헌병감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남산부장을 체포하겠다니....그러나 趙보좌관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金헌병감을 늘 믿어왔고 참모총장지시라는 말에 순식간에 사태를 짐작했다.


趙보좌관은 30분전 쯤 뭔가 긴박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때 김계원 비서실장과 노재현 국방장관, 정승화 총장이 함께 와서 조용히 이야기 할 장소를 찾기에 조보좌관은 자기 방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또 애기를 끝낸 鄭총장은 趙보좌관에게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을 급히 찾으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알았소, 金장군 그런데 여기보다는 접견실 쪽이 곧바로 비상통로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 그 방으로 불려내는 것이 좋겠소.” “그렇게 해 주시오.趙장군”


金헌병감의 대답을 들은 조보좌관은 혼자 회의실로 들어갔다. 같은 시각, 金헌병감과 함께 왔던 오일랑 보안사 군사정보과장은 보좌관실 앞에서 국방부 보안부대장 김병두 대령을 만나고 있었다. 金대령은 그날 저녁 7시경 집에서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가 국방부 보안 부대에 근무하는 오창식 문관의 전화를 받았다. “국가에 큰 위기가 터진 것 같습니다. 비상입니다.” 그대로 집에서 뛰쳐나온 金대령은 지금까지 국방부장관실 부근의 경계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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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는 허리에 실탄도 없는 권총을 차고 있었다. 국무위원들과 군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실탄을 장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터였다. 金대령이 헌병완장을 차고 있는 吳중령을 보고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사령관님께서 김재규를 체포 하라고 하십니다.” 吳중령이 귓속말로 말했다. 金대령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었다. 吳중령의 애기를 듣는 순간 국가에 큰 이변을 일어 킨 당사자가  바로 김재규라는 판단이 섰다. “알았다. 알았는데...헌병감과 둘이서 그 일을 하겠다는 건가?” “그야, 부대장님이 도와주셔야지요." ”그런가., 방금 전에 김재규가 물을 마시러 회의실 밖으로 나왔었는데...조금만 일찍 왔어도 그대로 잡아버릴  수 있었을 텐데...


金대령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 정보부장 수행부관 박홍주 대령이 吳중령의 시선에 들어왔다. 吳중령은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있는 박홍주대령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저기 박홍주 대령도 있군요.” “저 친구 권총을 차고 있군, 분명히 실탄이 장전되어 있을 거야. 吳중령 일단 상항을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저는 장관 접견실에서 김재규를 데리고 비상통로를 통해 빠져나갈 예정입니다. 부대장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吳중령은 金대령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조약래 국방부장관 보좌관실을 통해 金헌병감과 함께 장관 접견실로 갔다.


吳중령이 장관접견실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국방부 보안부대장 김병두 대령은 우선 청사안의 헌병 배치상항과 정보부장 수행원들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국방부 정문 앞에는 궁정동 총소리의 주인공들인 정보부 의정과장 박선호, 경호원 이기주, 김태원 등 세 명이 승용차 안에서 김재규 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金대령이 다시 장관 접견실 앞 복도로 달려왔을 대 정보부장 수행부관 박홍주 대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갈증이 난 박홍주 대령은 어느 방으론가 물을 마시러 들어가 있었다.


“김재규 채포 작전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복도에 웅성거리는 수행원들부터 단속해야 한다. 특히 박홍주 대령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金대령은 수행원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박홍주 대령도 거기에 섞여 있었다. 그대 金대령의 눈에 국방부 보안부대에 근무하는 오창식 문관이 띄었다. “어이, 吳문관! 너 이놈의 새끼, 여기서 뭘 하고 있어.” 金대령 휘하의 오창식 문관을 향해 별안간 호통을 쳤다. “여기가 뭘 하는 곳인데 얼쩡거리고 있냐 말이야. 우물거리지 말고 당자 보안대로 돌아가지 못하겠나?” 오창식 문관은 영문도 모른 채 국방부 보안부대로 줄행랑을 쳤다.


순간 金대령은 빈 권총 손잡이에 한 손을 올려놓으며 소함을 질렀다. “나 국방부 보안부대장이요. 이 자리에 있는 수행원들은 모두 옆방으로 들어가시오.” 일단 기선을 제압하고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린 것이다. 金대령의 고함소리에 복도에서 웅성거리던 20여명의 수행원들은 각자 옆방으로 흩어졌다. 바로 金대령이 노리던 바였다.  그들과 함께 섞여있던 박홍주 대령도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金헌병감의 부탁을 받은 조약래 국방부장관 보좌관은 임시 국무회의실로 들어갔다. 최규하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고, 김재규 정보부장은 따로 저만큼 떨어져 앉자 있었다. 趙보좌관은 김재규 앞으로 갔다. “부장님, 총장님 비서실장이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승화 총장님이 집무실에서 조용히 만나자는 연락입니다. ”그래! 내 부관은 지금 어딨나?“ ”부관은 저기 있습니다.“ 趙보좌관은 밖을 가리키며 거짓말을 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부관 박홍주 대령은 국방부 보안부대장 김병두 대령의 고함소리에 떠밀려 어느 방으론가 들어가 있었다.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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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잠시 머뭇거리던 김재규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趙보좌관이 앞장서 나오며 접견실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도수 높은 안경을 낀 김재규는 작은 몸집을 약간 뒤로 젖힌 채 접견실로 들어왔다. “총장 비서실장입니다.” 金헌병감이 경례를 한 뒤 예의를 갖춰 다가섰다. “ 총장은 지금 어딨나?” “벙커 총장실에 계십니다..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는 것이 빠릅니다.” 金헌병감은 회의실 맞은편 비상통로로 통하는 문을 밀면서 비켜 주었다. 김재규는 김헌병감과 吳중령, 이기덕 대위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저승사자”인 줄도 모르고 선선히 따라 나섰다.


그는 金헌병감이 총장비서실장이라고 위장한 것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또한 국방부 청사나 육본에서는, 특히 국무회의가 열리 때는 그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는 인사들은 헌병들이 안내하곤 했기 때문에 헌병 완장을 두른 보안사 군사보안과장 오일랑 중령과 헌병중대장 이기덕 대위를 안내요원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문밖 비상통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나서면서 김재규는 방안 쪽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朴대령 어디 갔지?” 그는 계속 수행부관 박홍주 대령을 찾는 것이었다. 국방부 청사 어느 방엔가 들어가 있는 朴대령이 그 자리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김재규가 계속 朴대령을 찾으면 예사롭지 않은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아, 바로 뒤에 따라올 겁니다.” 당시 朴대령이 누구인지도 몰랐던 吳중령은 임기웅변으로 대답하면서 재촉하듯 복도로 나섰다. 김재규는 吳중령의 말을 믿었는지 “사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金헌병감은 김재규 오른편에 붙어 섰다. 뒤에는 吳중령과 李대위가 바짝 붙어 걸었다. 김재규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주의를 받았기 때문에 金헌병감은 그의 오른손 움직임에 신경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내려가다가 뒤돌아보았을 때 吳중령과 李대위가 바짝 따라 오는 곳이 보였다. 金헌병감은 다소 안심이 됐다.



김재규가 순순히 따라 오지 않거나 반항하는 눈치가 보이면 덮쳐버리라고 李대위에게 단단히 일러두었기 때문이었다. 체포 팀은 김재규를 앞세운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김재규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왜 이 길로 가는 거지?” 평소 그가 국방부에 왔을 때 다니던 중안 통로가 아닌 것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가 의심을 하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VIP 용입니다. 최규하 총리도 이 길로 다닙니다.” 吳중령이 재빨리 둘려댔다. 김재규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VIP용이라는 말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재규가 계속 수행부관 朴대령을 찾고, 비상통로로 가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듯한 눈치를 보이자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헌병중대장 이기덕 대위가 吳중령의 옆구리를 살짝 치거나 꼬집곤 했다. “덮쳐버리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계단을 내려왔다. 김재규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던 吳중령이 앞질러 뛰어나가 현관에 거의 붙다시피 대기시켜 놓은 로열 레코드 승용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외등하나 없는 칠흑같이 캄캄한 국방부 청사 후문 앞에서 김재규는 그렇게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타시지요.” 金헌병감의 “안내”를 신호로 吳중령과 李대위가 감싸듯 김재규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미 뒷 자석에 타고 있던 헌병과 吳중령은 재빨리 김재규의 팔을 잡았다. “무장을 해제하겠습니다.” 吳중령은 김재규의 허리춤에 손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내가 꺼내주겠네” 김재규는 순순히 웅하고 있었다. 吳중령은 낚아채듯 권총을 빼앗아 밖에 서 있는 李대위에게 던져 주었다. 궁정동에서 충성을 터뜨렸던 , 아직 발사되지 않은 한발의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38구경 리볼버 권총에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압송해!” 체포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金헌병감의 입에서 짧은 한 마디가 쩌렁거리며 울려 나왔다. 김재규를 태운 승용차와 앞뒤 호위용 승용차는 동시에 라이트를 켰다. 세 대의 승용차는 어둠 속으로 국방부 청사를 돌아 옆문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국방부 청사 옆에 몸을 감춘 채 체포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정도영 보안처장은 김재규가 체포돼 가는 장면을 확인한 후 곧 바로 보안사 임시 캠프에서 기다리고 있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유선으로 보고했다. “알았다. 이학봉 에게 서빙고에서 조사 준비를 하도록 했으니까 우선 정동 분실 경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허화평을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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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를 실은 레코드 승용차와 두 대의 호위 차는 통행금지로 인적이 끊긴 수도 서울의 시내를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맨 앞차에는 방향을 선도했고, 뒤차는 혹시 따라올지도 모를 정보부 경호차를 경계하며 달리는 것이었다. 잠시 후 삼각지 로터리 고가도로 위에서 서울역 쪽으로 방향을 돌릴 때 김재규는 주면 상항을 위심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 김재규는 오른쪽에 바짝 붙어있는 吳중령에게 물었다. “저는 육본 헌병대장입니다.” 보안사 정보과장인 오일랑 중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지시 한데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헌병 헬멧에 완장까지 두르고 있었다.


鄭총장이 기다리는 육본 벙커로 간다고 하던 차가 삼각지 로터리를 지나자 김재규는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야 말을 해” 吳중령이 계속 답변을 회피하자 김재규는 명령조로 다그쳤다. “말씀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부장님께선 지금 위험한 처지에 있습니다. 총장님 지시로 지금 안전한 곳으로 모시는 중입니다.“ 차는 용산 미8군 수송부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김재규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어. 각하께서 돌아가셨단 말이야, 지금 병원에 있다구,”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듯 김재규는 현장 목격자인 김계원 비서실장만 알고 있는 사실까지 털어놓으면서 협박조로 설득했다. “아, 그렇습니까.”


자정이 지나 이미 새벽0시20분, 그때 갑자기 차가 멈추었다. 吳중령은 반사적으로 김재규의 팔을 꽉 잡았다. 남영동 로터리였다. 헤드라이트 속으로 경찰관둘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고 도로 앞쪽으로 바리 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吳중령은 그제야 통금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육본 헌병대장인데 서울역 좀 가야겠소.” 검문경찰들은 곧바로 바리케이트를 치웠다. 그때 또다시 문제가 터졌다. 차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 시동이 꺼져 다시 걸리지 않은 것이었다. 엔진 고장인지 당황한 운전병이 조작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재규가 탄 승용차는 움직일 줄 몰랐다.


순간 당황했던 吳중령은 뒤따라오고 있던 호위차로 옮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운전병, 서두르지 말고 뒤차를 붙여 옆으로 대도록 해.“ 吳중령은 왼손으로 김재규의 오른팔을 꺽어 뒤로 젖히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밑으로 눌러 숙였다. 검문경찰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김재규의 신분을 노출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행이 검문 경찰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뒤따르고 있던 호위 차는 곧바로 호송차 옆에 나란히 섰다. 김재규는 옆 차로 옮겨 태워졌다.


김재규를 태운 차는 다시 출발하여 남대문 쪽으로 질주해 갔다. 吳중령은 선도차를 앞질러가라고 지시했다. 따라올지도 모를 정보부 경호차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차는 곧 시청 앞에서 덕수궁 옆으로 꺽어 들어 정도 공작분실 앞에 이르렀다. 그때 김재규가 “음 이리로 왔구 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주의를 살펴보던 吳중령은 아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로 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운전병이 착각을 했든지 정보부 정동 분실 정문 쪽으로 차를 댄 것이었다. 보안사 정동 분실과 정보부 정동분실은 이웃에 있었으나 입구는 다소 떨어져 있었다.


만약 깁재규가 고함이라도 치면서 발악이라도 하고, 그러다가 총이라도 쏘게 될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吳중령은 잡고 있던 김재규의 팔을 힘껏 꺾어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차. 빼” 힘없는 노인네 김재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급히 후진한 차는 방향을 바꿔 보안사 정동 분실 앞에 이르렀다. 클랙슨을 누르자 서너 명의 무장한 경계병들이 뛰어 나왔다. 허화평 보안사령관 비서실장과 신동기 수사관도 정문 앞에 나와 있었다. 보안사 요원들은 급히 김재규를 인수해 2층으로 올라갔다. 숨 막히는 순간들이 지나간 그때 시간이 새벽0시40분이었다,


방 가운데 의자에 앉은 김재규는 자신을 채포해 온 오일랑 중령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 누구라 했지?” 그는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육본 헌병대장이라고 했잖소.” 거칠게 대답한 뒤 吳중령은 방에서 나왔다. “저 새끼, 안경부터 벗겨버려, 그러면 꼼짝도 못 할 거야.”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吳중령은 신동기 수사관에게 충고했다. 吳중령은 김재규가 눈이 몹시 나빠 안경 없으면 거의 지척도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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